우리 삶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믿음’을 떠올립니다.
누군가는 기도를 드리고, 누군가는 주술에 의지합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기도와 주술은 정말 다른 걸까? 그리고 우리가 그토록 붙잡고 있는 ‘믿음’의 본질은 과연 무엇일까요?

어느 여름밤, 외할머니가 쓴 작은 제단 앞에서 초가 타오르던 모습을 떠올립니다.
낡은 바가지에 떠놓은 물 위엔 촛불의 잔상이 일렁였고,
그 곁에서 두 손을 모은 할머니의 입술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읊조리고 있었죠.
그 장면은 분명 ‘기도’였지만, 누군가는 ‘주술’이라 부를 수도 있었을 겁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기도는 ‘신성한 것’,
주술은 ‘위험한 것’으로 구분하며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경계는 정말 분명할까요?
기도와 주술은 단지 의식의 형식이 다른 것일 뿐,
그 본질은 같은 ‘간절함’과 ‘믿음’의 형상 아닐까요?
주술 – 의지를 형상화하는 행위

주술이란 건, 쉽게 말해 마음속 소원을 현실로 끌어오려는 기술입니다.
흙을 빚어 인형을 만들고, 그 인형에 누군가의 이름을 새기고, 촛불과 향을 피워 간절함을 실어보냅니다.
무당은 북을 두드리고, 주문을 외우며 사람의 감정을 실체화합니다.
여기엔 분명 ‘형식’이 존재합니다.
그 형식 속엔 믿음이 물질로 구체화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이 언어와 도구로 실현되죠.
사람들은 이를 ‘주술’이라 하며 두려워하지만,
사실 그 안에 담긴 건 단순합니다.
“내 마음이 누군가에게, 어딘가에 닿았으면 좋겠다.”
이 간절함이 곧 주술의 뿌리입니다.
🙏 기도 – 관계 속에서의 나

기도는 누군가를 향해 마음을 여는 행위입니다.
신에게, 조상에게, 혹은 알 수 없는 더 큰 존재에게.
그 대상은 다를지언정, 기도의 본질은 ‘관계 맺기’에 있습니다.
어릴 적 어머니는 아침마다 정화수를 올리고 조용히 기도하셨습니다.
“우리 애 잘되게 해주이소.”
그 말엔 강한 주문도 없고, 요란한 북도 없었지만,
묵직한 진심과 정성이 있었습니다.
기도는 소망을 우주로 흘려보내는 일입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응답이 ‘응답’이든, ‘침묵’이든,
그 시간은 결국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순간이기도 하죠.
✨믿음이 머무는 자리
기도든 주술이든, 결국 우리는 믿음을 형태로 표현하고 싶어하는 존재입니다.
보이지 않는 힘 앞에 무릎 꿇고, 마음을 내어 놓는 순간,
그건 어떤 형태든 ‘신성한’ 시간이 됩니다.
중요한 건 형식이 아니라 마음의 진심.
도구가 아니라 간절함.
누군가의 기도가 누군가의 주술이 될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모두는 같은 본질, ‘믿음’ 위에 서 있다는 것 아닐까요?